2009년 03월 27일
Evolution report
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망설임은 꽤 있었다. 그 망설임은 이전에 없던, 어떤 낯선 것을 서술하는 것에 대한 우려이었을 것이다. 얼마동안 나는 고민을 하다가 이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유명해지기 위함도 아니고,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여겨서였다.
뭐든지 기록이 있어야 한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소한 일에까지, 기록은 늘 소중하다. 모든 역사에는 기록이 남아야 하고, 그 기록으로 인하여 과거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가 있다. 그럼으로 나는 지금 이 글을 적는다.
‘진화’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단어에는 수없이 많은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수없이 많은 종교가들과 과학자들의 논쟁이 담겨져 있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 과학이란 과목에 흥미가 없었다. 과학 시간을 떠올리자면 실험실에서 비이커 몇 개를 놓고 실험하던 생각이 고작이다. 비이커에서 연기가 나면 그것을 재밌어서 들여다보곤 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생물 선생님의 설명 따위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비이커에서 왜 연기가 나며, 그 연기의 성분이 뭔지는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기보다는 옆 교실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편이었다. 그만큼 나는 과학이란 과목 자체에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교과서에 실린 퀴리 부인의 이야기도 그저 그런 위인전으로 흘러들었다.
솔직히 나는 ‘진화’라는 개념을 믿지 않았고 생각하려들지 않았다. 오래 전, 인간이란 존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인간은 원래 직립보행의 상태로 만들어졌으며(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은 없다) 어떤 형태로든 진화의 과정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 여태껏의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의 근본이 어떤 동물의 모습이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람은 원래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났으며, 그 이후로 진화가 가능해졌다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다.
종교가들이 왜 ‘진화’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려면 ‘창조론’과 ‘진화론’의 거대 담론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 담론은 봐도 봐도 끝이 없을 정도로 광대하고 또한 난해하다. 나는 신학자도 아니며, 과학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분야는 내가 아니더라도 수없이 많은 신학자와 머리 좋은 과학자들의 논쟁거리이다.
나는 내가 아는 분야만 말하고 글을 쓰려 한다. 그것이 가장 솔직하고 나다운 발언일 것이다.
# by | 2009/03/27 12:23 | 트랙백 | 덧글(0)




